■ 책소개

앞을 보지 못하는 색채 전문가 샤를로트와
실업자로 전락한 전직 색연필 공장 직원 아르튀르의
‘색’을 되찾기 위한 대장정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큰 혼란에 휩싸인다. 무용지물이 된 신호등 때문에 도로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종말론자들은 최후의 날이 임박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낯선 회색 세상에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약물에 빠져든다. 우중충한 색의 물건들이 소비를 위축시켜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도미노처럼 금융 위기가 닥친다. 세상에서 색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색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란이 커져가는 와중에 ‘영웅’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기묘한 이인조가 이 난해한 사건을 해결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선다.

가스통 클뤼젤 색연필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다가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로 전락한 아르튀르. 그리고 그의 이웃에 사는 미혼모이자 시각장애인 색채 전문가 샤를로트. 두 사람은 사소한 오해로 아웅다웅하던 중 우연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샤를로트의 딸 루이즈가 가스통 클뤼젤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한 색연필로 생쥐를 그리자 세상에 분홍색이 돌아온 것. 두 사람은 루이즈에게 색을 되살려낼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제 필요한 것은 루이즈가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공장이 문을 닫기 전 생산한 마지막 색연필들을 찾아내는 것뿐. 아르튀르와 샤를로트는 함께 색연필을 찾아 나서고, 가족과 친구들이 이를 돕는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색을 독점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등장하면서 모험은 난관에 부딪히고 목숨마저 위협받게 된다.

색은 매 순간을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일상에서 그 특별한 가치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미학적 관점을 넘어 색이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각도로 연구해온 장가브리엘 코스는 색이 사라졌을 때 우리 일상 전반에 나타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내, 색이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색을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미적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나아가 작중 색채 전문가인 샤를로트의 목소리를 빌려, 색에 얽힌 문화와 역사, 과학적 사실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읽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뉴욕의 명물이 된 노란 택시 ‘옐로 캡’의 기원, 분홍색이 여성성을 상징하게 된 이유, 벽지의 색깔과 사랑의 상관관계 등, 책 속에서는 익숙하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색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지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색연필』은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 독특한 설정과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한 편의 성공적인 모험소설일 뿐만 아니라 색의 세계를 쉽게 안내하는 더없이 지적인 교양서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 감각의 일부로만 여기고 당연시해왔던 색의 존재가 저마다의 고유한 빛으로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